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주니치 드래곤즈/역대 선수 (문단 편집) === 투수 === * [[스기시타 시게루]] (1949 - 1960) 1954년 일본시리즈 우승 주역. 일본프로야구의 원조 [[포크볼]] 마스터이며, 주니치의 에이스 넘버를 20번으로 만든 이. * [[반도 에이지]] (1959 - 1969) 짧은 기간 주니치의 에이스로 활약한 뒤 예능인으로 지금까지도 왕성히 활동 중. 응원가 '불타라 드래곤즈!'를 처음 불렀다. 불타라 드래곤즈!를 부른 최초이자 유일한 OB로도 남아있다. * [[미즈타니 히사노부]] (1959 - 1974) 한국에서는 [[MBC 청룡]] 시절 코치를 맡았던 걸로 더 잘 알려진 인물. 주니치에선 선발과 중간을 오가며 뛰었고 한국에 오기 이전에도 주니치에서 여러 해 코치를 맡았다. * [[곤도 히로시]] (1961 - 1968) 선수 시절에는 주니치의 에이스이자 '''"곤도-곤도-비-곤도"''' 로 요약될 수 있는 [[혹사]]의 아이콘[* 데뷔시즌에 '''69경기 등판(44 선발), 35승 19패, 429.1이닝, 310 탈삼진, 1.70 ERA'''라는 정신나간 성적을 기록하며 [[사와무라상]]과 [[신인왕]]을 동시에 석권했지만, 2년간 불꽃같은 활약을 벌인 뒤 어깨가 망가졌고 결국 1965년부터 타자로 전향했음에도 얼마 활약하지 못하고 은퇴했다.]. 은퇴 후에는 명 투수코치이자 1998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우승 감독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이때 요미우리 팬들은 엄청 이를 갈고 있는데 전반기때 에이스 노릇하면서 팀을 1위로 질주시켜놨던 조성민을 시즌아웃시킨 장본인이라서 그렇다. 그이후로 요미우리는 주니치에게도 밀려서 3위로 추락했다. * [[돈 뉴컴]] (1962) [[재키 로빈슨]], [[로이 캄파넬라]]와 함께 다저스의 1세대 흑인 선수이자 에이스 투수로 활약한 선수로 메이저리그 사상 첫 [[사이 영 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위의 두 다저스 팀메이트와 하술할 [[래리 도비]]와 함께 올스타전에 처음으로 선발된 흑인 메이저리거로 기록에 남았다. 하지만 아래의 도비처럼 전성기가 지나고 찾아온 주니치에서는 큰 활약이 없었다. 특이하게도 주니치에서는 투수보다 [[1루수]] 출장이 훨씬 더 많았다. * ~~[[오가와 겐타로]]~~ ~~(1964 - 1970)~~ 1967년 [[사와무라상]]을 수상하는 등 에이스로 활약한 [[언더핸드 스로]] 투수이나, '''[[검은 안개 사건]]에 연루되어 [[영구제명]]되었다.''' * [[호시노 센이치]] (1969 - 1982) 일본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열혈남아이자 1974년 요미우리 V9 저지 시의 에이스. 안티 요미우리의 선봉장이었다. * [[이나바 미츠오]] (1971 - 1976) 낙차 큰 커브가 주 무기였던 오른손 투수로 입단 2년차인 1972년에 20승을 달성하기도 했다. 1976년 시즌이 끝나고 한큐 브레이브스와의 3:4 트레이드를 통해 한큐로 이적했다. 은퇴 후 친정팀과 닛폰햄에서 코치를 역임했고(1998-2001) 주니치 코치 1기 시절(1986-1997)엔 [[선동열]]을 지도하기도 했다. 코치 2기 시절(2009-2012)인 2012년 시즌 도중인 8월 11일 히로시마와의 홈 경기 도중 손 마비 증세를 호소하며 쓰러져 병원에 이송됐지만 당일 밤 8시 39분에 뇌출혈로 인해 사망했다. 향년 63세. 사망 한달 전인 2012년 7월에 심장에 제세동기를 삽입하는 수술을 받았던 것이 밝혀졌다. * [[스즈키 타카마사]] (1973 - 1989) * [[코마츠 타츠오]] (1978 - 1994) 80년대 주니치의 에이스. 요미우리의 [[마키하라 히로미]]와 함께 '스피드건 시대의 산물'로 불린 강속구 투수였다. * [[우시지마 가즈히코]] (1980 - 1986) 주니치에서 준수한 마무리로 활약했으나 [[오치아이 히로미츠]]를 데려오기 위한 4:1 트레이드로 롯데로 이적한다. 은퇴 후 [[요코하마 베이스타즈]]의 감독을 맡았다. * [[카쿠 겐지]] (1981 - 1996) 대만 출신 투수. 1988년 우승에 공헌한 특급 [[마무리 투수]]였으며 커리어 전반적으로는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통산 106승[* [[조 스탠카]], [[진 바키]], [[궈타이위엔]]과 함께 4명뿐인 NPB 외국인 선수 100승 투수이다. 다만 이쪽은 다른 셋과는 달리 커리어 도중에 일본으로 귀화했고 일본 커리어도 16년이나 보냈다.]-116세이브를 달성했다. 중국어 명은 궈위안즈. 한국식 독음은 곽원치. 선수생활 도중에 일본에 귀화했으므로 일본식 독음인 카쿠 겐지로 적는다. * [[야마모토 마사]] (1984 - 2015) 한국프로야구의 태동기에 데뷔해 30년간 일본프로야구 무대에서 활약한 산신령 좌완투수. * [[스기모토 타다시]] (1985 - 1990) * [[이마나카 신지]] (1989 - 2001) '유리의 에이스'. 혹사로 인한 부상으로 커리어를 일찍 접어야 했던 비운의 투수. * [[오치아이 에이지]] (1992 - 2006) [[삼성 라이온즈]] 1군 투수코치, 2군 감독을 맡았던 그 오치아이 맞다. 선수시절엔 90년대 주니치 중간계투진의 핵으로 활약했다. 2022시즌 1군 투수코치로 다시 주니치로 복귀했다. * [[노구치 시게키]] (1993 - 2005) 1999년 리그 우승 때 19승을 거두며 리그 MVP[* 이 해 같은 리그에는 신인왕 + 사와무라상을 석권한 요미우리의 20승 영건 [[우에하라 코지]]가 있었고 타자 쪽에서는 [[로베르토 페타지니]]나 [[마쓰이 히데키]]같은 거물들이 좋은 성적을 냈지만, 일본에서 리그 MVP는 높은 확률로 리그 우승팀의 선수가 가져가기에 이루어진 선정이라 볼 수 있다.]를 차지한 좌완 에이스 투수. 평균자책점 1위 시즌 2회(1998, 2001), 최다탈삼진 1회(2001)를 차지하며 주니치의 에이스 역할을 했지만 전임 에이스 이마나카처럼 혹사와 부상으로 인해 전성기가 빠르게 지나갔다. * [[선동열]] (1996 - 1999) [[사사키 카즈히로]], [[다카쓰 신고]] 등과 함께 당시 센트럴리그를 대표하는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나고야 각도기~~ * [[카도쿠라 켄]] (1996 - 1999) * [[카와카미 겐신]] (1998 - 2008, 2012 - 2015) 최고구속은 144km로 그닥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커터볼의 대명사라 불릴정도의 뛰어난 커터볼로 에이스가 되었다. *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 (1998 - 1999) 주니치 재적 당시 등록명은 [[삼손]] 리[* 이들 한국인 선수 세 명이 활약하던 시절 주니치의 인기는 [[박찬호]]가 있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맞먹었을 정도.] * [[이와세 히토키]] (1999 - 2018) '''일본프로야구 유일의 400세이브, 1000경기 등판''' 투수. 2000년대 내내 주니치의 불펜의 주축으로 활약하며 팀의 최전성기를 떠받든 [[프랜차이즈 스타]] 좌완 마무리 투수였다. * [[나카자토 아츠시]] (2000 - 2009) 2000년 주니치에 1순위로 지명됐던 우완 강속구 투수로 구로다 히로키와 후지카와 큐지에 버금가는 강속구를 자랑하던 투수로 아마추어 시절부터 초특급 유망주였지만 2002년 스프링캠프 도중 숙소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면서 어깨를 다친걸 시작으로 팔꿈치와 허리도 맛이 가며 이후 커리어가 꼬이기 시작, 2005년 8월에 복귀해 여전히 150km가 넘는 속구를 던지며 재기에 성공하는 듯 했지만 이후에도 부상과 수술, 재활을 반복한 끝에 2009년을 끝으로 방출된다. 이후 요미우리에 입단했지만 거기서도 2010년에 2경기 등판한걸 끝으로 2011년에 또다시 방출당했고 이후 은퇴를 선언했다. * [[아사쿠라 겐타]] (2000 - 2015) * [[카와사키 켄지로]] (2001 - 2004) * [[오카모토 신야]] (2001 - 2007) 오치아이 감독 시절 마무리 [[이와세 히토키]] 이전에 등판하는 셋업맨으로 활약했다. * [[오츠카 아키노리]] (2003) * [[다카하시 아키후미]] (2004 - 2015) * [[나카타 켄이치]] (2005 - 2013) * [[아사오 타쿠야]] (2007 - 2018) 일본프로야구 사상 유일하게 중간계투로 시즌 MVP를 차지한(2011) 강속구 우완투수였지만 혹사의 여파로 빠르게 전성기를 날린 비운의 투수.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